영국 명문대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University College London, UCL) 석사과정에 합격했다.
구체적으로는 UCL의 Information Studies 단과대의 디지털인문학(Digital Humanities)이라는 석사 프로그램에 오퍼를 받았다.
올해 9월부로 학기 시작이라 늦어도 8월 중순까지는 런던으로 떠날 예정이다. 드디어 한국을 뜨게 되다니 감개무량하다.

UCL은 200여 년의 역사를 가진 런던의 공립대학으로, 2024년 기준 QS 랭킹 세계 9위에 등재된 영국 명문대다.
대학 순위와 명성도 그렇지만 나는 이 학교의 건학 이념과 정신이 마음에 들었는데, 공리주의로 잘 알려진 제레미 벤담이 설립한 학교이기 때문이다.
제레미 벤담의 자유주의, 평등주의 사상에 기초해 영국 최초로 인종, 성별, 계급, 종교 등에 구애받지 않고 교육을 실천한 대학이다. 아주 멋져!
물론 제레미 벤담 때문에 UCL에 가고 싶었던 것은 아니고, 그냥 영국 대학 중에서 손에 꼽는 명문대이기 때문에 가고 싶었다.
내 목적은 영국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한 뒤에 현지 취업을 해서 단기 혹은 장기의 리로케이션(relocation)을 하는 것이고, 명성이 높은 대학원에 진학하는 것은 현지 취업에 득이 되면 되었지 실이 되지는 않는다.
지금 영국 취업 시장이 꽤나 박살이 났다는 사실은 알고 있지만, 나는 참을 인 자와 친하지 않은 사람이기 때문에 상황이 좋아질 때까지 한국에서 하염없이 기다리고 싶지는 않다.
3년의 직장 생활로 자본도 경험도 어느 정도는 축적된 이 시점에서 과감히 탈조선 프로젝트를 밀어붙이기로 했다.

사실 꼭 영국에 가고 싶었던 것도 아니다. 원래는 교환학생을 했던 네덜란드에서 석사를 거쳐 정착을 하고 싶었다.
교환학생 경험이 너무 좋았기도 했고, 학비나 물가 측면에서도 네덜란드가 영국보다는 경제적이라 암스테르담 대학(UvA)을 1순위로 고려했었다.
하지만 인생에는 늘 변수가 생기기 마련이다. 네덜란드도 현재 Housing 문제와 외국인 취업난 등이 심각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남자친구와 최대한 같은 지역으로 유학을 준비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영국 대학을 4곳이나 지원하게 되었다.
네덜란드 유학을 포기한 이유: 암스테르담 대학 석사 지원기
사실 영국 외에도 네덜란드 석사까지 사이드 트랙으로 준비했었다. 지금이야 KCL 석사 진학이 확정이 났지만, 불과 6개월 전만 해도 나는 영국보다는 네덜란드에서 석사를 하고 싶었다. 구체적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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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er 2 비자 연봉 상한선 등 이민자 꿈나무들에게 안 좋은 소식만 주는 야속한 영국이지만, 그래도 런던도 암스테르담 못지않게 아름답다고 느꼈던 도시였고 한 번 살아봐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던 곳이라, 결론적으로는 런던에 가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
영국에서 취업 실패하면.. 네덜란드 워홀을 가야 하나? 어디든 나를 받아 줄 곳이 한 군데는 있겠지. (한국만 아니면 됨)

SKY 학부를 나와서 적당한 외국계 기업에 입사해 워라밸이 (한국 치고는) 보장된 삶. 그 자체로도 나쁠 게 없는 감사한 일상을 살고 있지만, 나는 한국을 떠나 내가 더 정신적으로 행복할 수 있는 나라에서 여생을 보내는 것을 꾸준히 바라왔다.
한국은 너무 살기 좋은 곳이지만 내가 추구하는 가치가 잘 지켜지는 사회가 아니라는 것을 10대 시절부터 깨달았기에 '탈 한국' 미션은 어릴 적부터 내 게으른 머릿속 한 부분을 꾸준히 점유하고 있었다.
네덜란드에서 교환학생을 하면서 이에 대한 확신이 생겼다. 언어 사용에 어려움이 없다는 점, 새로운 문화와 인종 등 한국과는 정반대인 타자성과 다양성이 나랑 너무 잘 맞는다는 점을 깨달았고, 유럽에서 살아야 내가 진정으로 자유롭게 행복할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제대로 몇 년 살아보지도 않고 이런 결론을 내리는 것이 웃기기도 하지만,, 언어와 능력이 된다면 굳이 한 나라에서 평생을 보낼 필요가 없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나는 두 가지 다 충족되기에 떠나기로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좁디좁은 나라에서 28년이라니! 살만큼 살았다.

난 유학원 없이 혼자 모든 것을 준비했기에 영국 유학 관련해 많은 firsthand 정보를 제공할 수 있을 거라 본다. 네이버 블로그에도 조금씩 올리고는 있지만, 이 티스토리 블로그를 통해 영국 유학 및 런던 취업 등 유학/이민 관련 글들을 집중적으로 올려보려 한다.
우선 영국 유학이 가지는 메리트는 무엇이고, 단점이 있다면 또 무엇일까?
영국 유학의 가장 큰 메리트는 영국 대학들의 수준에 비해 외국인이 석사 학위를 따기가 쉽다는 것이다.
미국이나 유럽 국가들과 달리 영국에는 수업석사(Taught Masters)라는 1년짜리 과정이 있다. 통상적으로 2년인 미국 석사에 비해 영국 석사는 1년이면 학위를 딸 수 있다는 점이 주요한 장점으로 작용한다. 또한 미국 등과 달리 GRE, GMAT 등의 시험 점수를 (대부분) 요구하지 않아 지원 부담을 덜어준다는 것도 크다.
그럼 왜 이렇게 영국 석사는 유학생들에게 지원 문턱이 높지 않은 것처럼 보일까? 이는 영국 석사의 단점이나 문제점으로도 이어진다.
비단 영국만의 특성이라 할 수는 없지만 여기 대학들은 외국인 학생들에 대한 경제적 의존도가 크다. 국제 학생들은 영국인 학생들에 비해 2-3배에 달하는 등록금을 내야 하기에 외국인 유학생들은 영국 학교들에게 큰 수입원이다.
특히 중국이나 인도 쪽 유학생들은 사실상 영국 대학들의 캐시카우로 인식되는 경우가 태반이다. 물론 좋은 학교일수록 선별적으로 우수한 학생들만 받겠지만,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은 외국인이라면 영국 석사를 일종의 '학위 장사' 프레임으로도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즉 1년이면 끝나고 어플라이 난이도도 미국에 비해 낮다는 점이 유학생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오지만, 학위를 따낸 뒤 현지에 잘 정착하지 못하고 캐시카우 취급만 받다가 본국으로 돌아오게 될 가능성도 농후하다는 것.
특히 현재 영국에서 추진 중인 반이민 정책으로 인해 많은 유학생들이 희망하는 현지 취업 및 정착이 어려워지고 있다. 그만큼 신중하게 고민해야 하고 졸업 후 플랜에 대한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나는 언어는 크게 걱정되지 않지만 업계 불황이 큰 챌린지가 될 것으로 생각해서, UCL 석사를 통해 데이터 분석을 배우는 등 좀 더 경쟁력 있는 업계로 이직하는 것을 준비하고 있다. 내 뜻대로 잘 되지는 미지수지만 할 수 있는 건 다 해봐야지.

지긋지긋한 서열화가 난무하는 한국을 넘어 영국에서마저 대학 순위 줄 세우기를 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래도 '영국 명문대'의 기준이 어느 정도인지 알아두면 유학생의 입장에서 더 좋은 선택을 할 수도 있으니.
학위장사라는 슬픈 이면은 잠시 덮어두고, 영국에 좋은 대학이 많은 건 팩트다. 한국이 'SKY(S+KY 느낌이지만) 서성한 중경외시' 공식이라면 영국엔 명실상부 톱 대학인 옥스브리지(옥스퍼드+캠브릿지)와 이들을 포함한 골든 트라이앵글이 있다.
임페리얼 칼리지 런던 (ICL), 런던 정치경제대학교 (LSE), UCL, 킹스 칼리지 런던 (KCL) 이렇게 4개의 대학들이 골든 트라이앵글이라는 이름으로 옥스브리지와 묶여 연구 역량이 뛰어난 세계적인 명문대로 통틀어지고는 한다.
골든 트라이앵글 대학들이 포함된 더 브로드 한 명문대 집단이 러셀 그룹(Russel Group)이다. 미국의 아이비리그 비슷한 연합체로 총 24개의 영국 각지 대학이 소속되어 있다. 내가 지원할 학교들을 선정한 가장 큰 기준이 러셀 그룹 소속 여부였다.

런던에 위치한 러셀 그룹 대학은 임페리얼, LSE, UCL, 킹스, 퀸메리 이렇게 5개뿐이다. 한국에는 주요 상위권 대학들이 거의 다 서울에 몰려있는 것과는 사뭇 대조된다.
순위와 명성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지만 본인의 필드에서 어느 정도의 presence가 있는 학교인지 살펴보는 게 중요하다. 의대, 공대, 경영대 등 학교마다 주력하는 분야가 조금씩 다르고 학풍도 다르기에 본인이 원하는 커리큘럼의 프로그램을 찾기까지의 여정이 생각보다 오래 걸릴 수 있다.
런던을 벗어나면 학비와 생활비를 많이 절약할 수 있는 좋은 학교들이 여럿 있지만, 네트워킹이나 구직 활동에 있어서는 런던에서 지내는 것이 유리할 가능성이 크다. 즉 단순히 순위가 높고 평판이 좋은 학교를 가야 하는 것이 아닌, 여러 가지 요소를 복합적으로 고려해 고민해야 하는 부분이다.

UCL의 Digital Humanities 석사과정의 등록금은 3만 3천 파운드. 2025년 1월 초 기준으로 한화 6000만 원에 육박한다.
여기에 런던의 중저가 사설 기숙사를 렌트한다고 하면 매달 적어도 200만 원씩은 나오고, 식비와 생활비 등을 합치면 1년간 1억에 가까운 돈이 나갈 것으로 예상한다.
거금을 들여 안정된 보금자리를 떠나는 것은 일종의 도박이다. 브렉시트 이후 태양이 저물고 있는 영국의 경제 상황도 이를 방증한다.
암울한 현실이지만, 사실 지금 유럽 전반에서 독일을 제외하면 비유럽 외국인이 수월하게 정착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춘 나라는 많지 않다. 영국이 단연코 최선의 옵션은 아니지만 최악의 그것도 아니기만을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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