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외국어고등학교를 나왔고 국제학부에 특기자 전형으로 합격했다. (최종 입학은 다른 학부로 갔지만)
이 TMI를 말하는 이유는.. 남들이 수능 영어를 공부할 때 나는 토플 한 우물을 팠다는 뜻. ETS의 노예(?)까지는 아니고 캐시카우 느낌으로 살아왔달까?
여하튼 내 토플 성적의 히스토리를 나열해 보자면,
- 중3 때 첫 시험 (고려대학교에서 봤던 기억이 난다), 108점
- 고 3, 국제학부 입시용으로 최고득점 116점
- 대학교 3학년 때 교환학생 때문에 시험 2번, 112-113점 (돈 아깝게 왜 2번이나 봤지?;)
- 2024년 10월, 영국 대학원 제출용으로 인생 최고점수 119점
그리고 작년 말에 토플 인생 점수를 갱신했다. 고등학생 때 강남구 대치동 어학원 뺑뺑이를 돌면서 토플 극기훈련을 받던 불쾌한 기억 때문에 성인이 된 이후로는 ETS와의 연을 끊고 싶었으나, 유학을 가려면 영어점수가 있어야지.
낯선 아이엘츠보다는 지겹지만 그래도 친숙한 토플이 낫다고 생각해서, 거진 5년 만에 토플 시험을 봤고 최고 기록인 119점을 받으며 기분 좋게 토플을 떠나보낼 수 있었다.
물론 2년 유효기간 때문에 언젠가는 또다시 토플을 봐야 할 때가 오겠지만, 그 시점이 오기까지 이 점수를 사골같이 계속 우려먹을 작정이다.
예전에도 토플을 보면 110점은 항상 넘겼었는데, 이상하게 110점 후반대의 그 '마의 영역'에는 도달할 수 없었다.
RC, LC에서 실수를 하지 않는다 해도 SP, WR에서 도합 3-5점씩은 점수가 깎였던 것 같다.
이번 시험은 토플 개정 이후 보는 첫 시험이라 난이도가 올라갔다는 말도 있고 해서 좀 더 철저히 준비했는데 (물론 학원이나 과외는 하지 않았고 100% 셀프로 연습했다.) 생전 처음 SP/WR 만점이 나와서 상당히 뿌듯하다.
자랑은 여기까지 하고, 토플 스피킹/라이팅 만점을 받게 되기까지 어떻게 공부와 준비를 했는지, 나처럼 토플 고득점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팁이 있는지 개인적인 후기를 정리해 보겠다.
토플은 기본 실력 60% + 연습 40%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견해임을 감안하고 읽어주시기 바란다.
TOEFL은 토익, 텝스 등 국내 영어 시험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토플은 미국 고등교육 과정을 잘 따라올 수 있는지를 기준으로 설계된 시험이기에 영미권 원어민 혹은 장기 거주자들도 고득점을 못 받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토익이나 텝스는 단기간 집중 대비를 하면 점수 만들기가 수월하지만, 토플에서 100점이 넘어가는 고득점을 만들려면 기본적인 영어 베이스가 있지 않고서야 수개월 내로는 힘들다. 지문의 난이도부터 레벨이 다른 것도 있지만, 비원어민이 가장 벽을 느끼는 스피킹과 라이팅 섹션 때문이다.
원어민과 유창한 영어 회화가 되지 않고, 영어로 본인의 주장을 전개하는 짧은 글을 쓰는 것에 (번역기, 사전 없이) 어려움을 느끼는 사람이라면 토플 고득점을 위한 기본 베이스가 있다고 볼 수 없다. 즉 네이티브 스피커 급에 어느 정도는 견줄 만한 실력이 있어야 토플 고득점을 노려볼 만하다는 뜻이다.
어쩔 수 없는 게 토플은 전 세계의 잉글리시 스피커들이 보는 시험이다. 한국인들만 보는 토익 등에는 비교할 수 없다.
따라서 나는 토플 과외를 할 때도 수강생 분들께 솔직하게 말씀드린다. 토플은 기본 실력 60%에 연습/훈련 40%라고.
물론 공부를 계속할수록 기본 실력이 향상되지만 이는 결코 단기간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단기간에 토플 점수가 10-20점씩 훅훅 올랐다? 그건 그 사람이 외국어 습득 능력이 기본적으로 뛰어난 편이기 때문이다. 운도 작용하겠지만.
그래서 나는 수강생 분들께 현실적인 목표점수 세팅을 권유드린다. 80점이 간당간당히 나오는 사람이 두세 달 만에 세 자리 점수를 받기란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목표라는 것이다.
토플은 응시료가 워낙 비싸니 (달러 환율 때문에 이제 30만 원씩은 깨진다..!) 무료 모의시험을 통해 대략적으로라도 본인 실력을 가늠해 보고, 현실적인 점수 goal과 타임라인을 짜 보자.
토플 개정 이후로 시험 난이도가 계속 우상향 추세라는 점도 감안해 본인의 노력과 자본 투입 대비 얻어낼 수 있는 최적의 결과를 적절히 세팅해 두는 것이 성공적인 토플 여정의 첫걸음이다.
토플 과목(섹션) 별 고득점 전략은?
한국인이 가장 어려워하는 토플 섹션은 대부분 스피킹, 그다음 라이팅일 것이다.
기초 스피킹 레벨이 아예 안 되는 분들은 그냥 스피킹 섹션 자체를 포기하고 나머지 섹션으로만 점수를 채우는 전략을 취하기도 한다. 그러나 전술했듯 토플 고득점(110점 이상)을 현실적인 목표로 준비하는 사람이라면 어느 정도 concrete 한 영어를 뱉어낼 수 있는 사람일 것이다 (그래야 한다).
토플 스피킹 만점자로서 내가 생각하는 토플 스피킹에서 점수를 불러오는 주요 포인트는 세 가지다.
- 발음 - 선천적인 부분이 커서 노력으로는 향상이 어려움
- 유창함 - 꼭 완전무결한 문장이 아니더라도 막힘 없이 본인의 생각을 술술 풀어나가는 fluency. 연습과 훈련을 통해 향상될 수 있는 부분이다.
- 논리/구조 - fluency도 중요하지만 답변을 너무 의식의 흐름으로만 하거나, 주요 포인트를 언급하지 않거나 (통합형 문제에서) 등 내용적 측면에서 출제 의도에 어긋나면 안 된다. 연습을 통해 답변을 논리적으로 구성하는 능력을 쌓을 수 있다.
토플 스피킹의 가장 큰 챌린지는 시간제한이다. 답변 타임 리밋이 좀 어이가 없을 정도로 타이트하다.
본인의 개인적인 견해를 묻는 1번 독립형 문제의 경우 준비 시간이 15초, 답변 시간이 45초다. 템플릿을 쓰니 미리 포인트를 메모하니 할 겨를도 없다. 문제를 보자마자 바로 생각하고 뱉어내야 한다.
말 자체를 순발력 있게 하는 능력도 중요하고, 이를 영어로 유창하게 전달하는 실력도 필요하다.
발음과 같은 건 선천적인 영역이라 크게 어찌할 수 없지만 이 유창함과 답변 구성 능력(논리, 구조)은 트레이닝을 통해 충분히 향상과 개선이 가능한 부분들이다.
영어로 말하는 것 자체에 대한 두려움을 버리고, 외국어는 쓰면 쓸수록 늘면 늘었지 퇴화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마음에 새기자.
라이팅은 렉쳐와 리딩을 비교하는 통합형(Integrated)과 10분 내로 토론 주제에 대한 본인의 의견을 써내는 토론형(Academic Discussion) 문제로 구성돼 있다. 예전에 독립형 에세이로 나오던 2번 문제가 토론형이라는 새로운 유형으로 개정되었다.
라이팅은 스피킹과 달리 발음이라는 선천적인 핸디캡이 없기 때문에 꾸준히 내공을 쌓으면 점수 향상이 충분히 가능하다.
또 스피킹에 비해 토플 라이팅은 주제가 다 거기서 거기, 예상 가능한 범주 내로 나오기에 본인만의 outline과 어휘/표현 베이스, paraphrasing 테크닉이 잘 잡혀 있다면 적어도 평타는 칠 수 있다.
영어 글쓰기 능력을 가장 빠르게 향상하는 법은 well-written article을 직접 미러링(표현이 적합한지는 모르겠지만), 똑같이 타이핑(or 필사) 해보면서 문장 구조와 표현들을 익히는 것이다.
템플릿을 달달 외우는 것은 비추한다. 모든 지문과 문제에 딱 들어맞는 전지전능한 템플릿은 없다.
템플릿을 쓰고 싶다면 동사 등에 변화구를 준 다양한 variation을 만들어 두고 연습하자. 한 템플릿에만 모든 글쓰기를 끼워 맞추려 하면 본질적인 영어 라이팅 실력 자체를 쌓을 수 없다.
토플 리스닝 관련해서는 노트테이킹, 일명 '노테'를 어떻게 해야 하느냐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는다.
아무래도 노테에 익숙하지 않은 분들은 뭔가 계속 끄적이다가 지문 내용을 놓치고 집중이 흐트러지는 경험을 종종 하게 된다.
나는 그래도 토플 리스닝은 노테 훈련이 꼭 필요하다고 말씀드린다.
문제가 은근 디테일한 부분까지 나오기 때문에 노테 없이 기억력만으로 모든 문제를 완벽히 풀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노트테이킹이 제대로 되어있어야 스피킹과 라이팅 통합형 문제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짧은 시간 내에 lecture나 convo에서 다룬 요점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야 하는데, 노테 없이 이를 20-30초라는 짧은 시간 내에 하기란 불가능하다.
메모를 하면서 지문 내용을 따라가기가 너무 힘들다면, 출제가 예상되는 주요 포인트 및 키워드 위주로 받아 적는 연습과 효율적으로 노테 하는 노하우(줄임말, 기호 사용, 구분선 및 도식화 등)를 쌓아보자. 쉽지 않지만, 꾸준히 연습하다 보면 본인만의 스타일이 정립될 것이다.
RC는 난이도로 치면 가장 쉬운 영역이라 생각하지만, 내가 토플 만점을 받지 못한 게 RC 때문이라는 점이 참 아이러니하다... (아직도 궁금하다. 그 1점은 대체 어느 문제에서 깎였을까?)
리딩의 관건은 우선 집중력. 수능 국어와 같은 포지션으로, 시험을 시작하는 긴장과 다른 응시자들이 자리에 앉고 마이크 테스트 하는 등 내는 소음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지문에 집중하는 능력이 사실상 제일 중요한 것 같다.
독서실 같은 조용한 환경도 좋지만 가끔씩은 소음이 있는 카페나 회사(?) 같은 곳에서 실전 연습을 해 보자.
그리고 단어(voca), 즉 어휘력을 가장 효과적으로 높일 수 있는 방법이 리딩 연습을 통해서다. 해커스 보카 같은 단어 교재를 따로 구비할 필요가 없다. 리딩 지문들이 단어 모음집 그 자체 아닌가!
심지어 지문을 꼼꼼히 읽다 보니 단어책의 예문보다 훨씬 어휘의 맥락(context)과 쓰임에 대한 이해가 더 잘 된다.
나는 RC 지문에서 모르는 단어, 혹은 '이렇게도 쓰일 수 있구나'를 새로이 알게 된 단어와 표현을 구글 독스로 따로 정리해 '나만의 단어집'을 만들고 틈틈이 업데이트했다.
핸드폰에 구글 독스 앱을 깔아 두면 어디서든 쉽게 보고 복습할 수 있어서 편하다.
이번 편은 이 정도로 마무리하고, 다음 편에는 토플 독학에 유용한 모의고사 사이트 및 무료 예제 채널들을 정리한 정보글을 올려 보겠다. ETS의 캐시카우가 되지 말고, 한방으로 끝내자!
※ 토플 스피킹/라이팅 온라인 과외 문의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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