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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유학을 포기한 이유: 암스테르담 대학 석사 지원기

sayous 2025. 2. 4. 20:46

사실 영국 외에도 네덜란드 석사까지 사이드 트랙으로 준비했었다. 지금이야 KCL 석사 진학이 확정이 났지만, 불과 6개월 전만 해도 나는 영국보다는 네덜란드에서 석사를 하고 싶었다. 구체적으로는, 런던보다 암스테르담에서 살고 싶었다.
 
오늘의 주제는 그리하여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대학 (UvA) 석사에 지원했던 과정, 그리고 네덜란드 유학을 포기하고 영국 유학을 선택한 이유.
 
영국 석사 준비 과정은 아래 글 참고 ↓

 

[UCL, KCL 석사 합격] 영국 유학 서류 준비 타임라인

유학원 없이 영국 석사 준비 A to Z. 처음에는 정보도 확신도 없어 여러모로 막막했지만, 손품을 팔아 영국 유학에 성공한 다른 분들의 귀중한 경험담을 참고해가며 어떻게든 목표한 타임라인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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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영국보다 네덜란드에 가고 싶었던 이유는 암스테르담 교환학생 경험 때문이었다.

학교 생활을 상당히 개판으로 했는데 (막학년에 접어서야 정신을 차린 케이스) 유일하게 후회 없이 찬란하게(?) 보냈던 학기가 네덜란드 교환학기였다. 한국에서는 할 수 없는 경험을 하면서 암스테르담이라는 도시와 사랑에 빠졌고, 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연락하고 만나는 외국인 친구들을 사귀는 등 행복한 시간이었다.
 
네덜란드는 이민자들에게 상당히 열려있는 기회의 땅으로 유명했다. 과거형인 이유는 근 3-4년 간 상황이 안 좋아졌기 때문이다. 현재는 여기도 영국과 마찬가지로 극우가 꽉 잡고 있어서 유학도, 이민도 관문이 많이 높아졌다. (그래도 영국보다는 낫다고 본다. 적어도 비자 규제가 아직 UK급은 아니니까)
 

로테르담 근교 풍차마을(킨더다이크)

 
 
개인적으로 런던, 파리보다 암스테르담의 미감이 더 내 취향이다. 20대가 지나가기 전에 유학이든 취업이든 이 아름다운 도시로 다시 돌아와야겠다고 다짐했었다. 전자음악을 좋아하는 나에게 문화생활을 하기에도 최적인 곳이었고, 이미 한 번 살아봤기에 현지 정착이 더 수월할 것 같았다.
 
그리고 영국에 비해 학비가 훨씬 저렴하다는 것도 큰 메리트였다. 영국이 학비가 너무 도가 지나치게 비싼 것이긴 하다. UCL, KCL 오퍼를 받아서 기쁘지만 학비와 파운드 환율을 보면 표정이 실시간으로 굳는다...
 
네덜란드는 영국과 다르게 대학 줄 세우기, 엘리트주의가 심하지 않다. HBO(실무 중심 대학)와 WO(연구 중심 대학) 간의 구분은 뚜렷하지만 적어도 WO끼리는 교육 수준이나 인식이 비슷비슷하다. 그래도 나는 학교 간판을 어느 정도는 신경 쓰는 사람이라서, 네덜란드 대학 중 1순위로 종종 꼽히는 암스테르담 대학, 우바(UvA)에 가고 싶었다. 
 
암스테르담 대학의 미디어 전공이 QS 랭킹 1위인가 하튼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편이라는 말을 들었고, 무엇보다 데이터 분석 분야로의 이직을 희망하는 나에게 너무나 잘 맞아 보이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Master Cultural Data & AI

With roots in philosophy, history and discourse analysis, the two-year Research Master's in Media Studies explores pertinent theoretical approaches to the study of media in contemporary culture.

www.uva.nl

 
 
이 Cultural Data and AI라는 미디어 석사 전공 프로그램이다. 데이터 분석뿐 아니라 AI까지 (기술적으로 깊게 다루지는 않지만) 커버한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프로그래밍이나 컴퓨터 관련 배경이 없어도 지원할 수 있다고 되어있어 이건 나를 위한 전공이 아닌가? 하는 착각에 빠져버렸다.
 
네덜란드 대학원도 영국과 마찬가지로 보통 9월에 개강하고, 10월부터 내년도 입학 지원을 받는다. 영국 석사 지원과의 차이점은 Studielink라는 네덜란드 학/석사 통합 지원 시스템을 통해 1차로 지원서를 접수하고 (여기서 접수비도 결제) 이후 학교 자체 포탈에서 서류를 업로드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과정이 생각보다 느리고 영국 대학들처럼 메일 안내가 착착 잽싸게 오지 않는다. 뭔가 네덜란드 대학들은 영국 대학에 비해 유학생을 모집하는 데 그다지 적극적이지 않다는 인상을 받았다. (바람직하다. 그만큼 학생을 캐시카우로 보는 것이 덜하다는 것이니)
 
 

 
 
제일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은 내가 지원하는 프로그램이 SOP와 추천서를 요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추천서가 필요 없는 건 좋았으나 (부탁드리는 것도 일이다) 자기소개서(motivation letter)가 필요가 없다면 대체 뭘 보고 뽑는다는 것인지 의아했다. 내 열정과 역량과 영어 능력까지 자기소개서에서 제대로 보여줄 자신이 있는데, 이걸 안 받겠다고 해버리니 허탈하기도 했다. 
 
필요한 서류는 CV, 영어성적(영국처럼 나중에 낼 수 없고 지원할 때 증빙해야 했다), 학위/성적증명서 밖에 없었다. 자신 있던 SOP가 사라져서 하는 수 없이 CV에서라도 내 강점을 많이 살리려고 노력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이때 그냥 미련을 버리고 파운드 환전이나 해둬야 했다.
 
혼이 담긴 자소설, 이렇게 써야 합니다.

 

[영국 유학] UCL, KCL 석사 합격생의 SOP 작성 팁

영국 대학원 지원을 결심한 이상 피할 수 없는 가장 큰 관문, SOP(Statement of Purpose).Personal Statement, Motivation Letter 등 여러 이름이 있지만 본질은 자기소개서 내지 학업계획서로 똑같다. 나는 4개 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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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유로라는 싸지 않은 접수비까지 내고 결국 오퍼를 받지 못했다. 바로 입학은 안 된다며 프리마스터(석사 예비과정)를 권하던데, 나는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프리마스터에 돈과 시간을 쓸 생각이 없었다. 이로써 암스테르담 석사는 포기하게 되었지만, 그래서 왜 불합격을 준 것인지 이유를 알고 싶었다.
 
영국도 그렇고 네덜란드도 합격 결과에 대한 이유를 대충이라도 알려주는 경우가 많다. 메일을 살펴보니, 프로그램 페이지에 명시된 지원 자격에 충족되지 않는다 뭐 그런 식이었다. 솔직히 납득이 되지 않았는데, entry requirement 중 내가 충족하지 않는 부분은 없었기 때문이다. 국내 탑 3 안에 드는 대학의 미디어 전공 학부를 나왔는데 어디가 결격 사유라는 것인지? 
 
 

 
 
여러모로 납득은 안 됐지만 이 즈음에는 사실상 남자친구와 함께 영국으로 가는 것이 기정사실화 되어서 별다른 상심은 없었다. 그저 사유를 저렇게 아리송하게 적어주고 프리마스터 오퍼(프리마스터에 오퍼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것도 웃기다)를 수락하라고 계속 메일을 보내는 것이 조금 별로... 였달까.
 
나중에 암스테르담 여행을 하면서 현지 정착한 친구에게 이 얘기를 하면서 물어봤는데, 그 친구의 말로는 내가 학부 때 이수한 수업들이 해당 프로그램의 커리큘럼 지향성과 맞지 않아서였을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아무래도 네덜란드 대학원은 영국 대학원만큼 학벌과 직무경험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고, 대신 학부 때 어떤 수업을 이수하고 어떤 학문적 아웃풋을 냈는지를 중점적으로 보는 것 같다.
 
특히 UvA는 연구 역량을 중요하게 보는 학교라는 인상을 받았는데 (커뮤니케이션 등 다른 전공들을 보면 research proposal이나 샘플 에세이를 요구하는 경우가 많았다) 생각해 보니 나는 졸업 논문도, 별다른 프로젝트도 없어 나의 전공 분야 및 사회과학적 연구 측면에서의 우수성을 입증할 만한 근거가 없다. 수업도 전공 강의는 딱 필요한 만큼만 들었고, 학점도 그다지이라 그들 입장에서는 내 학문적 깊이가 얕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었을 듯하다.
 
내 모교가 세계 랭킹으로는 UvA와 거의 동급이라는 점, 거기에 직무경험과 만점에 가까운 영어 점수 등에 근거해 과도한 자신감에 사로잡혔던 것일까? 내 예상보다 UvA의 지원자 평가 및 선별 기준은 타이트하고 확고했다. 오히려 그만큼 일종의 학문적 소신이 느껴져 그 대학을 더 리스펙 하게 되는 기묘한 현상.
 
 

 
 
처음에는 100유로를 날렸다고만 생각했는데, 돌이켜 보면 좋은 경험이었던 것 같다. 나만의 좁은 시야와 기준으로 세상 만물을 꿰뚫을 수 있다는 착각은 버려야 한다는 뭐 그런...
 
네덜란드 유학은 포기했지만 네덜란드에 살고 싶다는 소망이 사라진 건 아니다. 유학만 포기했지 이민을 포기한 건 아니니까!
물론 지금으로서는 런던에서 석사 후 취업하는 것이 목표지만, 5년, 10년 이후 내가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고 있을지는 아직 모르니까. 네덜란드가 나에게 열려 있는 한 나도 more than open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