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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udes

음악과 예술의 도시, 암스테르담의 클러빙 문화와 나이트라이프

미국 UCLA라는 매력적인 선택지를 버리고 네덜란드의 유명하지 않은 대학으로 교환학생을 떠났던 이유는 그만큼 암스테르담이라는 도시를 동경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었다. 전자음악과 레이브 문화를 좋아하던 사람으로서 항상 미국보다는 유럽에서 살고 싶었고, 그중 특히 자유의 나라 네덜란드에 관심이 많았다. 
 
테크노의 성지 베를린부터 드럼 앤 베이스의 핫플 런던까지, 유럽 전반에는 전자음악과 클러빙 문화가 뿌리내려 있다. 네덜란드의 수도 암스테르담은 많고 많은 유럽의 도시들 중에서도 유독 전자음악의 장르 스펙트럼이 다채롭고 베뉴들에 대한 대중적 접근성이 높아 클럽 문화가 매우 활성화되어 있다. 전자음악 아티스트들에게는 기회의 땅과 같은 곳.
 
도시 홍보를 담당하는 암스테르담 시청의 'i amsterdam' 공식 홈페이지에서도 암스테르담의 클러빙 문화와 나이트라이프를 도시 관광의 키 포인트로 강조했을 정도다.  
 

Clubbing and nightlife | I amsterdam

When it comes to nightlife in Amsterdam, there are venues, dance festivals and club nights to suit every taste!

www.iamsterdam.com

 
클럽은 불건전한 유흥업소라는 한국적인 선입견과 달리 유럽의 클럽은 온전히 음악 그 자체를 향유하는 문화예술공간이다. 단순히 술에 취해 춤을 추는 '일반적인 클럽'을 넘어서 음악, 미술, 영화, 행위 예술 등 다양한 장르의 문화예술 이벤트를 주최하는 베뉴들로도 활발히 운영된다. 
 
언더그라운드 문화를 존중하면서도 음지가 아닌 양지에서 그것을 즐길 수 있도록 건전한 클러빙 문화를 국가에서 장려하고 지원하는 네덜란드의 시스템이 솔직히 많이 부럽다. 다른 방면에서는 몰라도 문화예술 방면으로는 선진국인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은 박물관, 미술관도 많고 다양한 콘텐츠가 있지만 좀 더 현지인들의 삶에 밀접한 나이트라이프도 살짝 엿보고 싶다면 베뉴 한 두 곳을 방문해 보는 것을 권한다. 그래서 이번 포스팅의 주제는, 교환학생 시절부터 얼마 전 크리스마스 네덜란드 여행까지 내가 직접 다녀와 본 암스테르담 클럽 및 복합문화공간들을 소개해 보겠다. 
 

불법 레이브 업소에서 모두를 위한 복합문화공간으로, Der Hintergarten

 

Der Hintergarten · Overschiestraat 188A, 1062 XK Amsterdam, 네덜란드

★★★★★ · 음식점

www.google.com

 

암스테르담에 사는 친구 소개로 이번 여행에서 처음으로 알게 된 베뉴, Der Hintergarten.
더치어로 '뒷마당'이라는 뜻인데 이름 그대로 버려진 컨테이너들과 주위 공터를 아늑한 마당처럼 꾸며 조성한 클럽이자 복합문화공간이다. 
 
위치는 조금 외진 곳에 있는데, 도시 서남부 일대의 Henk Sneevlietweg역 근처에 있고 암스테르담의 유명한 테크노 클럽 라디온(Radion)에서 도보로 15분 정도 거리에 있다. 구글맵에는 레스토랑으로 등록되어 있는데, 식당 운영도 하지만 하우스/테크노 파티와 문화행사를 메인으로 주최하는 베뉴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정식으로 영업신고를 하지 않아 불법 레이브 웨어하우스와 같은 장소로 운영을 했었는데, 이제는 신고가 되어서 합법적인 업소로 등록되었다. 원래 유럽의 레이브 문화의 시초는 불법 파티였다. 지금도 구글맵으로 위치가 뜨지 않는 숨겨진 건물 혹은 부지에서 레이브 파티를 하는 것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음악은 대개 하우스와 테크노가 나온다고 들었는데, 우리가 간 이 날은 UK 개러지와 정글 비슷한 트랙들이 많이 나왔다. 너무 진지하거나 무겁지 않고, 가볍게 즐길 수 있는 흥겨운 사운드. 거물급 디제이들이 아닌 친근한 인상의 로컬 디제이들이 말아주는 알록달록한 음악, 거기에 자유로이 몸을 맡기는 현지인들이 어우러진 분위기가 너무 좋았다.

 

 
토요일 밤인데 크리스마스 시즌이라 그런지 넉넉한 공간에 비해 사람이 많지는 않았다. 네임드 클럽들에 비해 아직까지는 hidden gem 느낌이라 아는 사람들만 오는 그런 분위기였다. 그래서 더 좋았는데, 이렇게 쾌적한 인구 밀도로 춤을 추고 놀 수 있는 암스테르담 클럽은 많지 않기 때문이다. 
 
청중의 규모는 작았어도 그들의 몰입도는 작지 않았다. 각자의 느낌대로 춤을 추면서 발산하는 에너지가 전혀 모자람 없었다.
놀랍게도 이 날의 이벤트는 무료입장이었는데, 이렇게 좋은 음악과 분위기를 무료로 즐겨도 되는지 황송했을 정도! 거기다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베뉴답게 생맥주를 팔았는데, 맛은 물론이고 가격이 너무 착해서 행복하게 취할 수 있었다. 
 

 
밖에는 이렇게 모닥불이 피워져 있는데, 이 주위로 둘러앉은 사람들과 불멍을 때리며 스몰토크도 나누는 등 즐거운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착한 가격부터 친근한 사람들과 분위기까지, 너무 훌륭한 가성비로 힐링을 할 수 있는 좋은 베뉴, Der Hintergarten. 네덜란드 현지인 친구를 사귀러 가기에도 좋은 장소인 것 같다. 
 

월요일에 디앤비를 즐길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 멜크웨그(Melkweg)

 

Melkweg · Lijnbaansgracht 234A, 1017 PH Amsterdam, 네덜란드

★★★★☆ · 라이브 음악 공연장

www.google.com

 
보통 클럽들이 문을 닫는 월요일, 화요일에도 암스테르담 몇몇 클럽들은 오픈하는 곳이 있다. 드럼 앤 베이스 먼데이, 테크노 튜즈데이 등 고유명사로 자리 잡은 파티들이 있는데 그중 멜크웨그(Melkweg)에서 열린 디앤비(DnB: Drum and Bass) 파티에 가 보았다. 
 
암스테르담 Leidseplien에 위치한 복합문화공간 멜크웨그는 클럽보다는 일종의 문화센터로 봐야 할 정도로 규모와 역사, 콘텐츠의 질과 다양성이 상당하다. 아래 이미지처럼 위키피디아에 등재되어 있을 정도다.
 

멜크웨그는 1900년대에 암스테르담의 우유 공장이었던 곳을 복합문화공간으로 개조해 클럽 파티, 콘서트, 영화, 연극, 전시회 등 매년 수백 개 이상의 문화예술 행사를 주최하는 베뉴로 탈바꿈한 곳이다. 어떤 날에는 디앤비 클럽이 되기도 하고, 콘서트홀이 되기도 하고, 극장이나 컨벤션 센터가 되기도 하는 등 암스테르담의 대중문화 씬에 많은 기여를 하고 있는 베뉴랄까. 

 

네덜란드는 이렇게 버려지거나 방치된 건물 및 부지를 문화예술공간으로 개조하는 도시 재생 사업이 활발하다. 예술성과 실용성을 둘 다 잡은 이런 케이스들이 한국에도 많아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월요일인데도 사람이 생각보다 매우 많아서 신기했다. 드럼 앤 베이스는 영국에서만 메이저인 장르라 생각했는데 암스테르담에서도 이 정도로 모객이 된다니 신기했다. 그리고 디앤비 청중(?)은 테크노 청중에 비해 전반적으로 더 친근하고 오픈된 느낌이었다. 말로 표현하기 힘든데... 테크노 클럽을 다니다 보면 죄다 볼드모트 느낌의 착장에 힘든 화장 등 특정한 코드가 있는데 디앤비나 정글은 그런 것 없이 그냥 평등하게 하하 호호 즐기는 느낌이다. 편견일 수 있겠지만 다분히 개인적인 감상.
 

 
디제이의 믹싱에 보컬/랩 라이브가 추가되는데 음향 믹싱이 마치 콘서트 음원을 추출한 것 마냥 깔끔해서 신기했다. 콘서트홀, 영화 상영관 등 다용도로 활용되는 복합문화공간이다 보니 확실히 사운드 시스템과 엔지니어링 수준이 잘 정제되고 프로페셔널한 느낌. 클럽 나이트가 아니더라도 암스테르담의 다채로운 문화예술 행사를 경험해 보고 싶을 때 멜크웨그는 한 번쯤 꼭 방문해 보기를 추천한다.  
 

부담 없이 즐기기 좋은 디스코/하우스 클럽, Radio Radio 

 

Radio Radio · Pazzanistraat 3, 1014 DB Amsterdam, 네덜란드

★★★★☆ · 나이트클럽

www.google.com

 
테크노나 디앤비처럼 딥한 장르보다는 좀 더 대중적으로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음악을 찾는다면 라디오 라디오를 추천한다. 
클럽 이름답게 실제로 뮤직 라디오를 운영하는 스테이션이고, 목/금/토에는 클럽으로 운영한다. 예전에는 피자 레스토랑으로도 영업했어서 피자 파티 (?) 같은 음악 이벤트도 종종 했었는데 요즘에는 라디오와 클럽으로만 운영하는 것 같다.
 

 
2개 층으로 이루어진 널찍한 건물에 붉은색 조명의 힙한 인테리어가 돋보이는 곳이다. 옛날 이태원 클럽 소프(soap)가 연상되는 힙하고 chill 한 분위기. 사람들 연령대도 다른 곳에 비해 여기가 좀 더 젊은 편인 것 같다.
 
많이 커머셜 하지 않은 암스테르담 클럽들 중에서 여기가 제일 진입장벽이 낮다는 인상을 받아서, 댄스 음악 초심자(?)와 함께 간다면 이곳이 좋은 선택지가 될 것 같다.
 

 

음악 팟캐스트에 관심이 있다면 라디오 라디오의 라이브 디제잉 시리즈를 청취하는 것도 추천한다. 다양한 장르의 댄스 음악을 무료로 감상하고 몰랐던 아티스들을 알아갈 수 있는 좋은 채널이자 플랫폼.
 

자동차 수리점에서 하드 테크노 클럽으로 재탄생한 개러지 노드 (Garage Noord)

 

Garage Noord · Gedempt Hamerkanaal 40, 1021 KM Amsterdam, 네덜란드

★★★★☆ · 동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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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본진인 애증의 테크노 클럽으로 마무리. 가라지 노드(Garage Noord)는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듯 암스테르담 북쪽 일대에 위치한 오래된 자동차 수리점을 하드 테크노 클럽으로 개조한 곳이다. i amsterdam 웹사이트에 소개된 몇 안 되는 언더그라운드 클럽. 
 

Garage Noord

Once an old car repair garage - hence its name - Garage Noord has been transformed into a beloved nightlife venue that typifies Amsterdam's club scene. Diverse, experimental and progressive, Garage Noord has its finger right on the city's pulse.

www.iamsterdam.com

 
이번 여행 때는 시간상 가지 못해서 5년 전 교환학생 때 가서 찍은 사진들밖에 없는데, 디제이 라인업이나 SNS 게시물들을 봤을 때 장르나 분위기는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 같다. 하드 테크노 베뉴라 멜로딕 하거나 말랑말랑한 사운드는 거의 안 나온다 보면 되고, 140-150 bpm대의 드라이빙한 비트를 즐길 수 있다.
 
장르 특성상 좀 마이너 한 느낌이 있고, LGBT+ 쪽 사람들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으니 취향에 안 맞는다면 방문을 추천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요즘도 그러는지는 모르겠지만 교환학생 시절 갔을 때는 가드가 입장 제한을 간간히 했었다. (일명 '유럽식 입밴', 착장이나 행동 등 전반적인 분위기가 클럽의 바이브와 맞지 않는다고 판단되는 사람은 안 들여보내주는 것) 
 
개인적으로 이런 입장 필터링은 취객이나 약쟁이 등 객관적으로 유해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만 한정해서 진행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가드들 멋대로 사람들을 입밴시키는 이런 테크노 클럽 특유의 문화를 좋아하지는 않는다. 근데 베억하인에서 일론 머스크가 입구컷 당했다는 이야기는 내 웃음벨이긴 하다. 

 

 
런던에서도 클럽을 얼마나 갈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짬을 내어 틈틈이 나만의 베뉴 리스트를 만들어 또 소개하는 글을 올려보겠다. 한 1년 뒤 즈음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