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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udes

블레이크 라이블리 - 저스틴 발도니 공방전으로 보는 PR의 본질, '언론 플레이'

지금은 디지털 마케팅 업무를 조금씩 깔짝대며 다른 분야로의 이직을 준비하고 있지만, 내 전 직장은 PR 회사였고 지금도 PR 업무를 일부 담당하고 있다. 연차로 치면 아직 주니어-미들 급이라 내가 PR 전문가라고 할 수는 없지만 전반적인 업계 생태계에 대한 이해도는 있다.
 
(그래서 더욱 탈출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 빅데이터 석사가 나를 구원해 올바른 이직의 길로 인도해 주기를)

킹스 칼리지 런던 빅데이터 석사 합격: 유학원 없이 오퍼를 받을 수 있었던 이유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UCL) 디지털인문학 석사과정 오퍼를 받은지 2주 반 정도가 지났다.같이 지원했던 킹스 칼리지 런던에서도 컨디셔널 오퍼가 왔다. 킹스 디지털인문학(Digital Humanities) 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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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게나마 PR 업무를 경험한 홍보 경력자로서, 지금 할리우드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블레이크 라이블리 - 저스틴 발도니 법정 공방을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다.
할리우드야 기삿거리 끊길 일이 없는 시끄러운 동네지만, 이번 건은 할리우드의 거물 배우들과 유명 팝스타 등이 얽혀 더욱 주목을 받을 뿐 아니라 드라마틱한 여론 반전으로 더욱 흥미진진한 양상을 띠고 있다. 
 
사건 개요는 외신이나 구글링, 유튜브 영상 등 각종 콘텐츠를 통해서 자세히 파악할 수 있지만 대충 정리해 보자면 이렇다.
 
레전드 하이틴 드라마 [가십걸]로 유명한 배우 블레이크 라이블리가 작년 말 영화 [It Ends with Us] 촬영을 함께한 감독 겸 배우 저스틴 발도니로부터 성희롱을 당했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소송 전부터 블레이크를 포함한 영화 출연진 및 관계자들이 발도니의 SNS를 언팔하고, 시사회 프리미어에서도 따로 다니는 등 불화설이 제기되어 왔다.
 
블레이크는 영화 촬영 도중 발도니가 부적절한 신체 접촉과 발언을 했다고 주장했고, 공론화를 막고자 발도니와 그의 홍보팀(TAG PR)이 소셜 미디어를 통해 자신을 비방하는 허위 정보를 유포했다고 주장했다.
 

 
여기서 눈여겨볼 점은 발도니의 홍보팀 "TAG(The Agency Group) PR"이라는 곳이 예전 조니 뎁이 엠버 허드와의 이혼 소송 당시 고용했던 회사라는 점이다. 조니 뎁과의 법정 공방으로 이미지가 산산조각 난 엠버 허드는 블레이크를 공개 지지, 자신도 SNS 상의 허위 정보 유포로 인한 피해자라며 발도니의 TAG PR을 통한 전략적인 블레이크 음해 활동을 지적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이처럼 동료 배우들과 영화 관계자들의 서포트로 초반에는 블레이크가 여론전에서 우세를 가져갔다. 그러나 최근 발도니 측에서 블레이크와의 문자/음성 메시지 전문을 공개하며 블레이크의 주장을 전면 반박해 여론이 반전되기 시작했다! 
 
블레이크 측이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증거를 편집하고, 영화 개봉 전부터 남편 라이언 레이놀즈와 함께 이 여론전을 기획했다고 밝힌 것. 구체적으로 이들 부부가 발도니에게서 영화 크레디트를 빼앗고 프로모션에서도 배제시키는 등 어떻게 이 신인 감독을 '묻어버리려' 했는지가 낱낱이 드러났다. 이에 발도니가 여론전에서 우위를 점하게 된다.
 
물론 아직 사건의 진실을 둘러싼 논쟁은 진행형이다. 발도니의 증거가 더 투명해 신빙성 있고 진정성이 느껴진다는 반응이 많지만 특정 커뮤니티에서는 블레이크를 지지하는 목소리도 작지 않다.
소송이 본격적으로 전개되어야 사건의 윤곽이 더 뚜렷해지겠지만, 확실한 건 블레이크와 라이언 레이놀즈 부부는 이미 크나큰 이미지 타격을 입었다는 것. 
 

데드풀 시리즈로 팬층과 영향력이 두터웠던 라이언 레이놀즈도 이미지 직격탄을 맞았다.

 
개인적으로 이런 셀럽 이슈들에 관심이 없어 누구의 말이 진실이지는 궁금하지 않다. 휴 잭맨을 좋아해서 데드풀 3도 챙겨보긴 했지만, 라이언 레이놀즈가 딱히 관심 있던 배우는 아닌지라. 내가 흥미롭게 느낀 점은 이 진흙탕 싸움이 PR의 본질인 '언론 플레이'를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블레이크가 고용한 홍보/위기관리 전문가가 뉴욕 타임스와의 커넥션이 있어 발도니에게 악의적인 기사를 내보낸 것도 미국 연예계에 만연한 언론 플레이 및 홍보 카르텔을 보여주지만, 발도니의 홍보팀인 TAG PR도 알고 보면 어둠의 언플 맛집이다. 지난해 민희진 사건으로 굉장한 언플 역량을 보여준 하이브가 인수한 회사답게 TAG PR은 민희진에 대한 비방 정보를 빌보드 칼럼니스트에게 넘겨주는 등 상당한 더티 플레이를 보여준 바 있다.
 
나는 언론홍보영상학부를 나왔고, 전공 따라 홍보나 해볼까 하는 마음에 PR 업계에 발을 들였다가 2년 만에 학을 떼고 마케팅 쪽으로 틀어야겠다고 결심했다. 아주 거창하고 고급스럽고 전문적인 것처럼 보였던 PR의 실상이 화려한 미사여구와 말장난의 조합 속 치밀한 언론 플레이, 그리고 미디어(기자) 카르텔이라는 것을 깨달아서.
 

레딧에서 보고 너무 공감이 갔던 글


니어들의 영역인 위기관리 PR이 특히나 그렇다. 번지르르한 언어 속 본질은 고도로 계산된 언플이다. 나는 (대부분의 경우에서의) PR의 실체는 '정보 큐레이션'과 '언론 포섭하기'라고 생각한다.
학부 전공 때 배운 위기관리 정석의 원칙 중 하나는 투명성이었다. 그러나 실제 세상에서는 유리한 정보만 골라서 짜깁기, 아주 정교한 큐레이션을 거쳐 미디어 네트워크를 이용해 마치 완전무결한 사실인 양 내보내는 것이 태반이다.
 
애초에 PR의 시초는 프로파간다, 사람들을 선동하는 것에서 비롯되었다. 이제는 뉴미디어의 시대라 전통 언론만으로는 파급력이 부족해, 댓글 조작 등 보다 다양한 수단과 채널을 통한 '여론 플레이'가 성행하고 있다.
이런 걸 아예 모르고 PR에 발을 들인 건 아니지만, 생각 이상으로 짜치는(더 고상한 표현을 찾지 못해 죄송하지만) 업계 행태에 점점 내가 하는 일에 대한 회의와 자조가 밀려왔던 것 같다. 나와는 전혀 접점이 없는 할리우드 배우들 간의 법정 공방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됐던 이유. 
 
9월부로 석사 시작이니, 코딩 공부나 열심히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