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P라서? 그냥 회사 체질이 아니라서
(주의) 상당히 개인적인 내용의 글이 될 예정. 정보글 아님.
아주 오랜만에 MBTI 검사를 했고 역시나 또 익숙한 그 네 글자, INTP가 나왔다.
물론 난 mbti의 과학성 내지 객관성을 전혀 믿지 않고, '오늘의 운세'와 같은 일종의 심심풀이 콘텐츠라 생각한다. 일단 질문들만 봐도 너무 의도가 투명하고 잘 와닿지 않아서 테스트를 보다가 중도 포기할 뻔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이 성격 유형이라는 게 대체 어떤 신빙성이 있길래 아직까지도 대중적으로 잘 먹히는 공감 코드이자 마케팅 요소로 팔리고 있는지 흥미로운 관점으로 바라볼 뿐이다.
INTP-T, MBTI 성격유형에 꼬리뼈처럼 붙는 '-T'라는 부분이 Turbulent를 의미하는 걸 이번에 처음 알았다. 자아가 안정되지 않고 좀 불안불안 흔들린다는 뜻이겠지? XXXX-A 유형은 XXXX-T에 비해 좀 더 stress-resilient 하고 자기 자신에 대한 확신이 있다는 개념인 것 같다. (아니라면 정정 코멘트 환영. 나는 MBTI의 기초 원리? 체계? 같은 건 잘 모른다.)

안 그래도 요 근래 업무 스트레스와 맞붙은 identity crisis로 불쾌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는데, 이 부분이 좀 반영이 된 것이 아닌가 싶다. 가장 큰 문제는, 일단 일을 너무 하기 싫다. (언제는 하기 좋았냐?)
현업의 메인 비중이 마케팅 쪽 어카운트에서 PR 쪽 어카운트로 다시 옮겨지면서, 하기도 싫고 개인적으로 '의미가 없다'라고 생각하는 일들을 다시 담당하고 있는데, 나름 '시니어'라는 키워드가 들어가는 포지션으로서 책임이 꽤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더 부담으로 다가오면서 예전에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던 자잘한 것들에도 예민하게 반응하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PR(홍보) 직무가 나와는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아래 포스팅에 자세히 나와 있다.
블레이크 라이블리 - 저스틴 발도니 공방전으로 보는 PR의 본질, '언론 플레이'
지금은 디지털 마케팅 업무를 조금씩 깔짝대며 다른 분야로의 이직을 준비하고 있지만, 내 전 직장은 PR 회사였고 지금도 PR 업무를 일부 담당하고 있다. 연차로 치면 아직 주니어-미들 급이라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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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정말 하기 싫었던 고객사 행사를 커버하고 왔는데, 오랜만에 이런 기업 대외 홍보 겸 고객 네트워킹 행사를 다시 해보니 정말 이 직무(PR, B2B 홍보) 자체가 나와 안 맞는다는 것을 진하게 느꼈다.
더 나아가 최근 들어 (구체적으로는 영국 대학원 오퍼를 받은 이후에) 계속 든 고민, 직장생활에 대한 회의 그 자체가 다시금 짙어졌다. 물론 헬조선의 직장인의 대다수는 사직서를 마음속에 품고 산다지만, 나는 보다 근본적인 차원에서의 고뇌: 특정 기업에 소속되고 특정 업무에 종속되는 것 자체가 내 체질에 안 맞는다는 생각에 기반한 내적 몸부림을 겪고 있다. 한 마디로 그냥 나는 뼛속부터 회사 체질이 아닌 것 같다는 뜻이다.

인팁이면 단체생활, 조직생활 굉장히 힘들어하지 않냐, 어떻게 직장을 그렇게 잘 다니고 있냐는 말을 숱하게 들어왔다.
(그냥 내 사회성 결여에 대한 피드백일수도 있지만) 이것에 대해선 뚜렷한 내 주관이 있는데, 나는 일(=돈을 받고 직장을 다니면서 하는)에 자아실현의 의미를 두지 않는다. 일은 자아실현을 위한 백업 수단이지 자아실현 그 자체가 아니다.
자아실현이 무엇인가? 내가 행복을 느낄 수 있는 무언가. 나 같은 경우엔 음악. 그 무언가를 하기 위한 여유와 기반을 만드는 방법이 회사를 다니며 일을 해서 자본을 축적하는 것이다. 물론 그만큼 스트레스라는 불행을 얻기는 해도, 그만큼 돈 걱정 없이 자아실현에 매진할 수 있는 여유를 가져다주니까.
그래서 나는 그만큼 직장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고 (스카이 학부를 나왔지만 대기업 지원을 아예 하지 않았다.) 직무 자체나 조건(페이, 네임밸류 등)보다도 내 취미(=자아실현) 생활을 보장할 수 있는 워라밸을 최우선 가치로 두었던 거다.
그래서 워라밸이 보장되는 지금 회사로 들어왔고, 지금도 워라밸 측면에서는 너무 만족하지만 최근에 행사 준비 하면서 간만의 헤비한 워크로드와 정신없음을 겪으면서 이 직무, 그리고 업계에 대한 불만, 더 나아가 생계수단이라는 단일한 명분 아래 내 신체적/정신적 에너지를 앗아가는 corporate system 자체에 대한 회의/반감이 샘솟아 버렸다. (그냥 반사회성 DNA가 활성화되어 버린 듯?)
외국계 기업의 장단점: 업계 4년차의 외국계 이직에 대한 고찰
유학생활, 해외취업 관련 포스팅을 집중적으로 올리려고 개설한 블로그지만 커리어, 특히 이직 관련해서도 글을 꾸준히 올려보려 한다. 네이버 블로그에도 올린 글이지만, 외국계 기업에 이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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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석사과정(9월~) 때문에 데이터 분석이랑 프로그래밍도 슬슬 입문 공부를 해야 하고, 커리어 피벗을 희망하는 만큼 자격증 등 추가 스펙을 뭐라도 쌓아야 하는데 지금 계속 내 기준 '의미 없는(나한테 도움이 안 되는)' 현업에 얽매이는 상황이 너무 고까워져 버린 상태다.
대학생 때 더 성실히 살았다거나, 더 예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전공을 더 슬기롭게(=취업에 유리한 분야로) 골랐다거나, 더 올라가서 아예 해외 대학을 갔다거나 했다면 좀 더 아웃룩이 밝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계속 든다. 물론 설령 그랬다 해도 내 게을러터진 천성 때문에 드라마틱한 멀티버스는 없었을 것 같긴 하지만.
킹스 칼리지 런던 (KCL) 디파짓 납부하기 - 영국 반이민 비자 정책 근황
킹스 칼리지 런던 (KCL) 석사 오퍼를 받은 지 3주 남짓의 시간이 지났다.UCL과 KCL 중 어디가 내 미래에 더 도움이 될지 3주에 걸친 심사숙고 끝에 킹스로 최종 진학을 결정했다. 킹스 칼리지 런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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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가장 큰 가치는 누구에게나 행복이다. 그 행복이 누구에겐 돈이고, 누구에겐 사랑, 누구에겐 가족, 누구에겐 일(=워커홀릭😕,,), 각양각색인데 나에게는 그게 구체적으로 딱 세팅이 되어 있다. 적어도 현재로서는 자유롭게 내가 만들고 싶은 음악을 만들고 내가 지향하는 아티스트(너무 거창한 라벨이긴 하지만)가 되어가는 과정이 행복인 셈이다
그렇다고 모든 걸 다 내던지고 음악만 잡고 싶지는 않다. 내가 하고 싶은 것과 실제로 잘할 수 있는 것의 차이도 있고, 여유가 받쳐줄 때의 마음가짐에서 진짜 내가 좋아하는 것을 다루고 싶기 때문이다. 진짜 '음악만' 하는 사람들은 나 같은 부류를 고깝게 보는 경우도 많지만, 그건 그들 생각이고, 예술의 본질은 창작이지, 애티튜드나 라이프스타일이 아니다. 적어도 내 생각에는.
뭐 이런 주저리가 무슨 소용이 있나. 해놓은 곡 작업마저 하고 (그래도 올해는 EP를 발매할 수 있을 것 같다. 레이블만 잘 찾으면) 온전한 청각과 정신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어떻게든 에너지를 쥐어짜 내어하고 싶은 걸 해야지. 퇴사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아도, 워라밸과 나이스한 팀원들을 생각해서 5-6개월만 참자고.. (과연?)

정말 현실적으로 생각하면 지금 내가 집중할 우선순위는 해외취업 준비(=코딩 공부, BI 쪽 자격증 취득 등등)에 더불어 자본 축적이다. 하나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자아실현은 따로 있으니 (음악 작업) 그것들 간의 갈팡질팡 저글링이다. 거기에 회사가 이렇게 내 에너지를 많이 잡아먹고 있어서 갈피도 못 잡겠고 몸도 마음도 지친 상태여서 이런 주저리와 같은 글을 싸질러 버렸다.
다시금 느끼지만, 가기 싫은 회사에 꿋꿋이 출근해하기 싫은 업무를 하고 교류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과 소통하는 한국의 직장인들은 참 대단한 사람들이다. 나는 비교적 느슨한 환경에서 일하고 있음에도 이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는다니 내 소셜 역량치가 걱정스러워질 정도다. 그래서 결론은?
프리랜서로 자리 잡아야겠다.. 는 막연한 꿈을 꾸고 있고, 5년에서 많아도 10년 안에는 이것을 실현할 수 있는 베이스를 쌓아 두어야겠다. 21세기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디지털 노매드의 삶, 외국어는 되니까 능력/경험치만 쌓아서 어떻게든 길을 강구해 보자고.
그리고 그전에 음악가로서 뭔가 solid 한 디스코그래피를 만들어 놓아야겠다. 양이든 질이든 자기 만족도든 어떤 척도로든 간에, 괄목한 만한 성과가 있게끔 작업을 해 놓을 거다. 지금은 맥북 에어에 싸구려 이어폰이 다지만, 서서히 장비도 내공도 작업물의 퀄리티도 업그레이드를 시켜나갈 것이다.